top of page
이미지 제공: reza shayestehpour

21) THE WORLD 세계
디거스

                                                    
                                                                 

세계(The World)

 

 인파가 넘치는 고독한 거리를 걸으며 젊은 예술가는 사색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모두가 진정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대중들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죄수복과도 같은 단조롭고 무개성한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기 내면에 잠들어 있는 예술이 생기 넘치게 고동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알고 있는 뮤즈는 언제나처럼 그가 모르는 곳에서 고요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예술가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날의 전시회는 그저 자신의 방법이 예술에 무지한 시민들에게는 효과가 없었음을 직시당한 하나의 거대한 시련과 다름이 없었다. 자신만의 마도술, 꿈을 가져다주는 비눗방울은 한없이 얇고 나약한, 바람의 도움 없이는 한치도 나아갈 수 없고 손짓 한 번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허상에 가까울 뿐이었다. 공기까지 얼어붙은 듯한 전시회장 안에서, 온기도 신념도 없는 암울한 기계 덩어리를 새로운 미래의 모습이라 소개하며, 형상 없는 말을 내뱉을 뿐인 사업가는 꿈을 꾸는 법조차 잊어버렸고, 우롱당한 예술가는 두 손과 발이 묶인 체 입까지 틀어막혀서는 결국 스포트라이트의 선명한 빛이 매정하게 자신을 어둠 속으로 버리고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아, 예술은 결국 죽어 버린 것인가?

 이 길 위 수많은 사람 중에 자신을 오롯이 아는 이는 도대체 몇이나 될까. 젊은 예술가는 비어있는 비눗방울 용액 용기를 자신의 눈앞에 두고 의미 없이 흔들어 보았다. 나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이 고독한 예술가에게 남의 도움이라는 것은 영영 일어나지 않을 헛된 일이나 다름없다는 건 본인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은 이내 그의 머리 위로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잊고 있던 런던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우중충하고, 무채색의, 생기 없는... 어쩌면 그의 꿈은 영영 이뤄지지 않는 것이 운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작디작은 확률로, 이 세상이 뒤엎어지게 된다면?

 작은 빗방울 하나가, 그의 눈 앞에서 다시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세상을 감싸고 있던 허울도 한 올 한 올 벗겨져 나갔다.

 

 아, 이 얼마나 거짓 없는 세계인가? 흑백의 페인트 아래 가려진 것은 강인하게 생기를 뿜어내며 고동치고 있는 수십 가지의 빛깔들이었다! 딱딱하고 단조로운 직선의 건물들과 도로는 요동치며 수많은 유연한 곡선으로 흩어지고, 시민들은 그제야 타인의 시선도, 고위의 평가도, 서로의 겉치레도 필요 없이 서로의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수많은 빗방울은 무뚝뚝한 시선을 거둬내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도록, 처음 그들이 세상에 발을 디뎠을 때와같이 원점으로 돌아가도록 다정하게 이 세계를 끌어안았다. 그 누구보다 예술을 멀리했던 이들이 전위예술의 앞잡이가 되리라 누가 믿었겠는가! 예술가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왔던 해답을, 자신 홀로 다가갈 수 없었던 이상향을, 뮤즈가 지금, 이곳, 이 자리에서 그의 눈앞에 완벽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떤 과거로 돌아가도 세계가 이렇게나 황홀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떠오르는 빗방울 안에서 소리 내 웃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며, 마치 최초의 인류가 잃었던 낙원을 발견한 사람처럼 환히 미소 지었다. 마치 그는 그가 만들어낸 비눗방울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소망이 이루어진 달콤한 꿈에 빠진 것처럼... 이 뒤집힌 완벽한 세계 안에서, 그는 깨어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다음날의 태양은 떠오르고 살아있는 자들은 잠깐의 죽음에서 눈을 뜬다. 이 땅에 남은 마지막 빗방울이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면, 그도 이 흐드러진 세계와 함께 어느 짧은 여름날의 꿈처럼 덧없이 사라는 것이 순리였다. 예술가는 이 세계와 함께 자신이 없어진 대도 좋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떠오르는 빗속에서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던 여인을, 감상에 젖어있던 예술가는 이제서야 그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세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람들 사이, 그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황금빛 시선은 그의 숨을 멎게 만들었고, 거부할 수 없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이의 손을 잡으면, 마치 이 행복한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처럼...

 젊은 예술가는 그이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또다시 그에게 다가올 완벽한 미학의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 수없이 많을 아름답고 선명한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COPYRIGHT©2024 BLUEPOCH사의 모바일게임 <리버스: 1999> 타로카드 비공식 합작 ALL RIGHTS RESERVED.

각 페이지에 있는 모든 글과 그림은 각 제작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며 무단으로 전재 및 유포, 2차 가공을 금합니다.
​​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