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THE EMPRESS 여황제
베이비블루
Rdi
딩동
"누구지? 잠깐, 여긴 벨이 없는데."
딩동딩동
"흐음... 자리에 빠진 손님도 없어. 더 올 사람이 있었나?"
딩동딩동딩동
"아, 너였구나. 어서와 다들 기다렸어."
소녀는 문을 활짝 열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맞이했다. 모두가 그 손님을 알고 있다.
1865년 11월. 영국. 관측되지 않은 폭풍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텅 빈 홍차의 맛이 났다.
#1 The Empty Tea
'지붕에는 흘러 넘치는 설탕시럽. 각설탕으로 만든 장미들. 접시를 깨물어 부수면 진한 홍차 향이 나지.'
'장미와 접시도 그와 어울리는 것으로 준비 해 두었어. 원더랜드에선 티파티가 끝나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치만 가끔은 티파티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해.'
'너무 슬픈 일이야.'
'그 때 ^(*#@?!을 @_)9_**$$%하지만 않았어도...'
베이비블루가 깨어있는 상태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부분 그녀는 자신의 숙소에서 잠을 자거나, 로렌츠 연구소의 가상몽유 연구동에서 수면 연구를 돕기 위해 잠을 자거나, 그도 아니면 원더랜드로 초대할 주민들을 물색하기 위해 아주 잠깐 깨어있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대인만큼 이야기 중에 딴청을 피우는 정도는 소녀를 초대한 쪽이 너그러이 감내해야할 터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그러니까 어쩌면..."
'으음... 지금 뭘하고 있었지?'
"베이비블루, 듣고 있어?"
'맞아, 지금 난 초대를 받았었지. 누구였더라.'
베이비블루는 자신을 초대할만한 이를 떠올려본다.
그녀에게 원더랜드 바깥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아니 전혀, 짐작도 안 가. 미안하지만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
"좋아. 곧 벌어질 폭풍우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일이야. 우린 네 도움이 필요해"
소녀는 감은 눈을 천천히 뜨며 맞은편에 앉은 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대화 상대는 '무슨 문제라도?' 하고 짧게 반문하고는 다시금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버틴. 맞아. 모자장수처럼 멋진 모자를 쓴 아이.'
'그 애도 그 애만의 원더랜드를 가지고 있었어. 그치만 조금 독특했지. 거긴 달이 없었거든.'
베이비블루가 베시시 웃었다. 그녀 주변의 일그러진 다기들도 조금 일렁거렸다.
"특수한 사례긴 하지만 어쩌면 재단이 폭풍우를 극복한 첫 사례가 될지도 몰라.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달이 없다니. 웃긴 일이야. 그럼 달에 사는 괴물은 살 곳이 없게 되는 거잖아."
소녀는 머릿속에서 맴돌던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그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했지만 소녀는 그것이 꽤 만족스러운 결론인 양 침묵했다.
"일단,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네."
버틴은 맥락을 잃은 그녀의 대답에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방문자는 자리를 옮긴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소녀는 방문자가 남겨둔 침묵에 맞춰 진자 운동을 하듯 몸을 흔들었다.
분명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이닥칠 것임이 분명했다.
어쩌면 유서깊은 티파티의 주최자로서 새로운 손님들에게 파티의 규칙을 가르쳐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의 원더랜드에 초대받을지도 모를 노릇이지.'
#2 현장방문
1865년 11월 25일 영국. 폭풍우 발생까지 앞으로 24시간
인적이 드문 한 숲 속, 중절모를 쓰고 여행가방을 든 소녀와 겨울에 맞지 않게 하늘거리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나무 둥치 아래에서 걸어 나왔다.
"토끼굴은 기대보다 재밌진 않았어 버틴. 폭풍우는 토끼굴보다 재밌어야 할거야."
"이동방식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거 사과할게. 하지만 재단의 공식적인 업무로 방문한 건 아니라서 말이야. 이런 경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어."
"으음? 그렇구나. 그럼 폭풍우 아래에서의 공식적인 타임키퍼 업무는 뭐였어? 비를 맞는 카드병정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 아니면 뇌우에 푹 젖은 찻잎들을 볕에 잘 말리기라도 했니?"
타임키퍼라 불린 소녀는 잠깐 멈칫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는 폭우 속에서 그저 끝나가는 시대를 기록할 뿐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이번 폭풍우는 베이비블루, 네 마도학자로서의 마도학 재능과 유사하니까.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거라 믿어."
"아, 기록. 중요한 역할을 했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일처럼 말이야. 물론 매번 상자에서 죽은 고양이를 꺼내 묻어줘야 했다면 꽤 괴로운 일이였겠지만, 다행히도 체셔씨는 항상 살아있었거든.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타임키퍼는 침묵이 꽤 많은 경우에서 올바른 대답이 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버틴이 바깥의 세계를 잘 기록해두어서 다행이야. 원더랜드에도 버틴같은 성실한 기록관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
"고마워"
꿈꾸는 듯 한 그녀의 모든 문장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녀의 헌신을 다 보았다는 듯 베이비블루의 애정 어린 음성에 버틴은 그녀의 진심과 위로를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이번 폭풍우의 징조들이 강하게 나타난 마을이 나올 거야. 우린 그것들을 조사하고 폭풍우를 늦출 방법을 찾아야 해."
"그리고 새로운 티파티 방문객을 맞이해야지."
"맞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야지"
버틴은 잠깐 새에 베이비블루와 대화하는 법을 터득한 모양인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원더랜드의 주인은 달없는 세계에서 온 방문객의 대답이 퍽 마음에 들었다.
#3 카드 병정과 인형의 집(1)
부슬비를 뚫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마을의 한 유치원이었다.
"도착했어. 여기가 폭풍우의 징조가 발생했던 태니얼 유치원이야."
"조용하네. 이상하게 졸리기도하고."
베이비블루의 말대로 이곳은 지나칠 정도로 적막했다. 본디 어린아이들과 교사들이 뷸규칙한 소란을 만들어내던 곳이었으므로 단순히 그 대비감 탓일지도 모르지만, 버틴은 깊은 물처럼 가라앉은 공기 속을 헤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재단의 폭풍우 예측까지 얼마 안남았으니 간단하게만 설명할게."
"이틀 전 이곳 태니얼 시의 인간 아이들이 의식불명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어. 재단은 이를 폭풍우의 전조로 규정하고 의식불명에 빠진 아이들을 라플라스 측의 의료시설로 옮겨 상태를 확인했지. 그들은 모두 정상이었어. 마도술에 노출된 것도 아니었지. 한가지 문제가 된 건 그들의 꿈이 현실을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애석하게도 티파티의 규칙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구나."
베이비블루가 말꼬리를 덧붙이자 버틴은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의 꿈속에서 튀어나온 카드병정들과 불을 내뿜는 인형들 탓에 라플라스의 병동은 엉망이 되어버렸어. 재단은 재단의 안전을 위해 인간 아이들을 다시 이곳에 되돌려놓을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러면..."
버틴은 힘겹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폭풍우가... 모두를 지워버릴텐데"
"하지만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버틴."
베이비블루가 읊조렸다.
"마도학자든, 인간이든, 어린아이들은 각자의 원더랜드를 그려내는 법이야. 상상 속 친구들이 가득한 환상의 세계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상냥하지. 그래서 내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의 이름과 모습마저 기꺼이 내버릴 만큼."
그녀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찻잔과 주전자가 깨질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들 잊어버리지."
"[시간]이 그들을 바꿔놓아."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몸집은 커지고 그만큼 중력이 강해지거든."
"..."
"그러면, 그러면, 발을 딛고 선 땅을 벗어날 수 없게 돼."
"그렇게 원더랜드로 향하는 문은 닫혀버려."
"영원히"
"나처럼 그 [시간]을 #& &%^)@**((_%...."
원더랜드의 주인은 고개를 젓는다. 지금 버틴에게 자신의 실수를 알려줄 수는 없다.
그녀는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직접 겪지 않으면 오해만 가득 쌓일 뿐이다.
언제나처럼
베이비블루의 상념은 비눗방울처럼 부풀어가다 버틴의 물음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럼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들면, 지금 폭풍우를 가속시키고 있는 전조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그들의 짧은 대담 또한 끔찍한 괴성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런"
카드병정들이 울부짖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싸움을 피할 수는 없어 보였다.
#4 카드 병정과 인형의 집(2)
전투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베이비 블루의 황금열쇠로 하트 4를 쓰러트려도, 스페이드 10과 다이아 3이 덤벼들었다. 그녀의 친절한 친우 채셔씨가 22,55 투페어를 묶어두고 있으면, 금세 클로버 5가 가세하여 풀하우스를 이루어 반격해왔다.
"지금 같은 식으론 끝날 기미가 안보여"
"어린아이의 상상력은 무한하니까. 이건 어른의 것인 것 같지만."
그녀의 말이 옳았다. 어린아이의 카드놀이에 포커게임 족보는 필요없지.
베이비블루는 농담처럼 말을 이었지만 이내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세번째 티파티에 에이스 포카드와 다이아 스트레이트를 초대해 해치운 참이었다.
"나... 더는... 안되겠어."
그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그녀는 전투의 소란과 혼란스러움을 벗어나 익숙한 안식을 찾아가는 듯 했다.
"졸려... 버틴."
"베이비블루?"
버틴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지만 이미 베이비블루는 자신의 원더랜드로 돌아가버린 듯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막아서는 저항이 사라지자 카드병정들은 해일처럼 베이비블루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손쓸 새도 없이 커다란 카드 몸통들이 이불처럼 그녀를 덮어 짓눌렀다.
"베이비블루!"
기이한 정적이 또다시 주변을 가득 메웠다. 간신히 찾은 평화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버틴의 부름에도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Rebecca'
버틴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린다. 그 음색은 베이비블루와 같지만 같지 않았다.
버틴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Rebecca, Wake Up!'
카드더미 속에서. 소녀는 그것만이 제 이름인 듯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카드병정들은 낙엽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여긴 정말 기이하네. 버틴. 너와 같이 이쪽 세계에 있지만 동시에 저쪽의 원더랜드에 있는 것만 같아."
그녀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자 세계가 공명하듯이 일렁거렸다.
"마치 폭풍우가 내게 힘을 주는 것처럼 느껴져. 네 생각은 어때?"
버틴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침묵을 택하는 듯 보였다.
맞아. 언제나 침묵은 많은 답변들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버틴. 내가 사랑하는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세계를 상상해본 적 있어?"
달없는 세계의 방문자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는 그녀에게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알려줄 생각이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라면 그 실수에서 유일한 해법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영웅이 될 수 있어서,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어서 그곳에 남는 게 아니야."
"그곳에선 누가 어떤 모습이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줄 테니까."
"바라는 모습이나 형태가 없더라도 그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거야."
"내게도 답은 없어."
"하지만 너라면 내 오답에서 답을 발견할지도 몰라."
"버틴. 보여줄게. 내 원더랜드를."
쏟아지는 빗방울이 점차 멈춘다.
타임키퍼라 불리는 소녀의 눈동자가 놀람과 공포에 떨린다.
하지만 빗방울은 거꾸로 올라가지 않고 그자리에 멈춘 채다.
그녀 주변의 생명들도 조금도 해체되지 않은 채 멈춰 있었다.
"원더랜드에 온걸 환영해. 달없는 세계의 방문자."
적막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깨졌다. 원더랜드의 여왕만이 그녀 앞에 있었다.
#4 Time Killer
베이비블루는 친구들과 영원히 티타임을 즐기는 것에 그리 지루함을 느끼진 않지만, 가끔은 후회한다. 그녀의 티타임에는 항상 공석이 존재하고 그 공석의 주인은 영영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원히 빈자리일 것만 같은 곳에 새로운 손님이 방문했다.
"자, 여기 앉아. 버틴."
베이비블루가 안내한 자리는 조용한 정원에 마련된 작은 정자였다. 차를 마시기에 좋아보였다. 테이블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방금 마련된 것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테이블과 의자 모두 흰색으로 도장된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고급스럽고 깔끔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테이블 위에는 단정하게 배치된 찻잔과 찻주전자, 그리고 연보라빛 제비꽃으로 꾸며진 꽃병이 놓여있었으며, 그밖에 작은 디저트나 간식이 담긴 접시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각 자리들 앞에는 예약석처럼 작은 이름표가 놓여있었는데 버틴에 앞에 놓인 이름표만이 다른 것들과 달랐다. 그것에는 타임키퍼라고 쓰여있었는데, Time은 다른 이름표들과 마찬가지로 유려한 필체의 이텔릭체로 쓰여있었다면, 나머지 Keeper 는 꼭 어린아이가 적은 것처럼 서툴게 쓰여져 있었다.
타임키퍼가 제 자리에 앉자 원더랜드의 주인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
"버틴. 난 [시간]을 죽였어."
"사전적 의미로 시간을. 죽였단 의미야? 아니면 관용어로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미야?"
"둘 다이긴 하지만. 지금 하는 이야기는 전자에 가까워."
소녀는 공중에 뜬 찻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붉은 액체를 찻잔에 깔끔히 받아내고는 말을 이었다.
"버틴. 아까 했던 이야기 기억해? [시간]이 원더랜드에 이끌린 아이들을 바꿔놓고. 그렇기에 더는 원더랜드에 올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
버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게 싫었어."
"난 원더랜드에 더 오래 있고 싶었거든."
"그래서 [시간]을 죽여버렸어."
"그런데 그러면 안됐어."
"그건 끔찍한 실수였어. 오답이었어."
소녀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변함없이 텅 비었네.' 하고 혼잣말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는, 원더랜드는,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없는 세계야."
"절대 완성되길 바라지 않았기에 미완성인 채로 완결되어버린 세계야."
"나무들은 항상 꽃 펴있지만 그 탓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끔찍한 곳이며."
"나는 그 세계에 영원을 가져온 돌아가지 않는 방문객이지."
말을 잠깐 쉬며 찻잔을 내려놓는 그녀의 머리칼 위에는 어느새 피처럼 새빨간 하트모양 왕관이 얹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오답이 네가 고민하는 문제의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이곳에서 시간을 죽인다면"
"그러니까 이곳의 [시간]마저 죽여버린다면."
"내 원더랜드처럼 말이야."
"그러면 모든 세계의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면 분명 폭풍우를 멈출 수 있을거야."
"폭풍우가 내게 힘을 주고있는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선택은 네 몫이야. 버틴"
"잠깐... 그러면 너는? 베이비블루 너는 어떻게 되는건데?"
타임키퍼가 반문했다. 그것은 침묵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별 것 아니야. 그저 조금 오랫동안 원더랜드에 다녀오는 것뿐."
"...만에 하나라도 네가 돌아오지 못하는 가능성이 있다면 허락하지 않을거야."
"그렇지는 않아. 분명."
"그렇다고 해도...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 [시간]이 필요하구나. 기다리고 있을게."
타임키퍼는 마련된 티타임에서 벗어나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소녀는 그녀의 대답을 이미 알 것 같았다. 버틴은 자신의 제안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라면 어설픈 거짓말쯤은 파악할 테니까. 베이비블루와 태니얼시 모두 영원히 1865년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그녀와 재단은 시간이 부리는 변덕을 멈추고 모두가 예전처럼 계속 앞으로 진행하길 바라는 것이지, 시간과 아주 절교해버리곤 영원히 티파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테니. 그리고 누군가를 그 시간 속에 영원히 남겨두는 것도 버틴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한다. 시간은 하나뿐이고 그렇기에 그녀는 소중하니까.
그래. 예정대로 폭풍우는 올 것이고, 우리는 그걸 막아내지 못한 채 또 과거로 표류하겠지.
#5 달 관측
생각해보면 시간이 죽어버린 뒤로 원더랜드에는 언제나 혼자였어. 난 모든 걸 내 뜻대로 조정해 놓을 수 있었지만 (체셔 고양이씨만 빼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지. 하지만 버틴의 가방 속과 원더랜드를 오가면서 나는 많은 세계들을 보았어. 많은 사람들도 만났지. 항아리에서 끊임없이 물이 쏟아지는 샘물씨도 있었고, 과일사탕을 좋아하는 아이(나만큼 원더랜드에 자주 가는 것 같았어)도 있었어. 그리고 그중에는 당신과 당신의 세계도 있었어! 난 당신이 매일 같이 사탕을 찾는 것도 알아. 당신이 속한 세계는 너무 바빠서 매번 우리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알아. 당신이 손에 든 작은 화면으로만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알아. 이쪽의 시간은 제멋대로지만 당신의 시간은 근면성실한 것 같아 다행이네.
흠흠, 작은 부탁이 있어. 들어줄 수 있을까? 폭풍우 바깥의 관찰자 친구.
이번만큼은 관찰을 멈춰주었으면 해. 그것만이 이번 폭풍우 사태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어. 가끔은 가방 속에서도 원더랜드에서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때가 있었거든, 그건 분명히 네가 작은 화면에서 멀어져서 우리를, 이 세계를 관측하지 않았을 때였어. 그렇지?
관측되지 않은 폭풍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슈뢰딩거의 고양이씨처럼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상태겠지.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할 일은 지루할지라도 눈을 감는거야. 원더랜드 바깥의 세계가, 버틴의 세계가 무사하려면 아무리 궁금해도 덮은 책장을 열어보아선 안되는거지. 알겠어?
그럼 이제 셋까지 세고나면 눈을 감을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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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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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0 그렇게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