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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reza shayestehpour

9) THE HERMIT 은둔자
겨울

                                                    
                                                               

우산

*시인과 박새의 관계성에 대한 개인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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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도학자는 하얀 밭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정해진 도착지란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그의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러한 길을 걸었던 걸까. 내가 시의 첫 글자를 적기 시작할 때부터? 첫 글자를 떼고, 진정으로 시를 적어갈 때부터? 그것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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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을 뜬 곳은 하얀 섬 안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주변에 널브러진 양피지 몇 장과, 다 닮아 사라진 깃펜 한 자루. 그리고 은 동전 몇 닢.

 

마도학자는 몸을 일으켰다. 눈으로 쌓인 몸은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그가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

 

갑작스러운 일으킴에 머리 한편 이 아려왔다. 고개를 한두 번 저어서 허공을 바라보자 나아진 두통에 그는 길을 계속 걸었다. 하지만….

 

 

…어라.

 

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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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 얼마 만에 만끽하는 자유인가! 신나는 지저귐을 내뱉고서 푸른 도화지 위에 하얀 선을 그어가던 새는 실수로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나무를 바라보았다, 얇은 나뭇가지에 부딪힌 걸 보아 그렇게 심한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은데, 다행이다. 새는 다시 허공을 가로지르다가 우뚝 멈추었다.

 

…나 무언가 잊은 것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

 

하얀 마도학자는 혼란스러웠다. 이곳은 저가 있던 유배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블라디보스토크도 아니었다. 순백의 도화지 위에는 그의 발자국만이 남아 어두운 선을 남겨두었다.

 

“하아...”

 

자신의 처지를 깨닫자, 마음속에 숨어있던 공백이 느껴졌다. 분명 그의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제 근처에는 아무도 없으니, 마치 한 조각이 빠진 퍼즐처럼 완벽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널브러진 양피지를 정리하면서도 그런 꺼림칙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분명 옆에 작은 누군가가 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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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다시금 하늘을 날았다. 푸르른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언젠가의 공백이 채워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허공을 날아다니던 새는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박새 무리를 발견했다. 나와 닮은 하얀 몸에, 날개 끝에 있는 갈색의 깃털. 작은 새는 이곳이 그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확신했다.

 

작은 새는 그들을 향해 날아가, 나뭇가지의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넘쳐흐르는 심장의 고동을 정리하고, 작은 새는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니?

 

하얀 눈 안의 검은 보석 같은 눈이 일제히 그를 향했고, 작은 새는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나는 내가 느끼고 있는 공허를 없앴으면 해. 너희는 답을 알고 있어?

 

작은 새의 질문에 그들은 입을 맞추어 불쾌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작은 새가 끼어들 곳이 아님을 의미했다. 작은 새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날아올라 자신이 있을 장소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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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하얀 마도학자는 자신이 떨어트린 양피지의 개수를 점검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양피지가 전부 그의 손에 있음을 확인하자,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스러진 과거의 연을 찾아 나선다

떠나간 길, 그 위에 남은 작은 발자국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겹쳐

하이얀 설원 위 검은 선을 만들어간다

 

작은 깃털 하나, 큰 발자국 하나

작은 발자국 하나, 적어내린 글자 하나

 

자신의 글씨로 써진 정갈한 글자를 바라보던 그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자를 쓴 하얀 박새, 나의 곁에 함께 있던 작은 지저귐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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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다시 허공을 가로지르며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다녔지만, 하얀 섬의 어디에도 그가 서있을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새는 천천히 지쳐갔다. 춥고, 배고픈 상태로 길게 날아가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그는 하얀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의 날개 사이에 소복이 파고드는 하얀 눈이 기분이 좋아서….

 

졸려…

 

하얀 새는 눈을 감고 추위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추위를 누군가와 함께 느꼈던 것도 같은데. 누구였더라?

 

하얀 머리카락과, 따스했던 손길의…

 

맞아, 시인. 나의 소중한 친우. 그가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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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은 시인은 근처를 헤매며 그의 작은 새를 찾았다. 그가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던 유일한 존재였는데, 나 혼자는 완벽한 ‘겨울’ 이 될 수가 없는데.

 

“겨울아...”

 

시인은 허공 속에서 그의 이름을 말했지만,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하기보다는 그를 찾아낼 방법을 찾아내려고 했다.

 

시인은 문득 작은 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분명 내가 시집을 들고 있었고, 겨울이가 이것에 부딪혔었지. 그 아이는 투덜대기는커녕, 나의 시집을 보며 관심을 가졌어.

 

그렇다면, 나의 시집을 들고 있으면 네가 다시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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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눈밭에 누워 작은 짹짹 소리만 내고 있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고독과 굶주림의 눈보라 속에 갇혀있던 그는 마지막 힘을 내며 날아올랐다.

 

맞아, 나의 시인도 나를 찾고 있을 텐데, 내가 여기서 주저앉고 있으면 안 돼. 나는 그의 보호자야, 내가 그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옅은 머리에, 옅은 눈. 매일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모습만 보이고. 하지만 다른 친구들을 열심히 챙겨주고, 시를 쓸 때의 진중한 모습을 너의 곁에서 응원하고 싶어지는….

 

나의 시인, 나의 소중한 친구.

 

지금 너는 어디에 있니?

─────

 

 

 

시인은 시집을 높이 들어 올렸다. 짙은 나무색의 시집은 하얀 눈 밭 위에서 하나의 마침표가 되었다. 방황은 이쯤에서 멈춰야 해,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되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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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하얀 도화지 위로 그의 마침표를 찾아 나섰다. 방황은 이쯤에서 멈추어야 한다. 작은 날갯짓을 모아 너에게 닿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한 ‘겨울’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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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마침표 위에 서 있었고, 작은 새는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날갯짓을 써 내려갔다. 완전하지 않은 추위가 완전한 겨울이 되기까지 하얗고 작은 새는 그의 혼신을 다해 문장을 써내려갔다.

 

그들이 만나기까지 세 걸음. 시인은 작은 새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시집에 조심히 앉았다. 작은 새의 몸을 조심히 쓰다듬었던 시인은 그의 모자를 정돈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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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리를 내뱉듯 지저귀며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 친구 없어?

 

시인은 새의 눈을 마주했다. 맞아, 나에게 처음으로 물어본 것이 이 질문이지. 그리고 나는,

 

“아니, 친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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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이 될 수 없어, 그리고 너 또한 겨울이 아니지.

 

우리가 ‘겨울’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서로가 필요하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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