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THE MAGICIAN 마법사
찰리
이상
*본 합작글은 찰리의 일화가 공개되기 전에 작성 및 마감을 끝낸 글입니다. 배경 스토리와 대사만으로 캐해를 했기 때문에 캐해가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리어 왕의 망령 >
1655년의 어느 화창한 날.
찰리는 풀밭 위에 몸을 눕혔다.
늘 원했던 것이었다. 고향에 돌아가서 소젖이나 짜는 평범한 생활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도시 지역을 벗어나 시골 마을로 순회를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시골은 돈벌이가 안 된다며 반대하던 단원들도 결국 마음을 열었다.
사람이 많아 복잡한 도시는 금방 지치기 일쑤다. 특히 청교도 사상에 입각한 금욕 정치의 추격에서 벗어나려면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차라리 경비가 느슨하고, 규율이 머리를 괴롭히지 않으며, 템포가 느린, 적은 인구에 그 모두가 인정이 넘치는 시골 마을이 좋다. 소심한 찰리의 성격에는 그것이 딱 적절하다.
풍차가 삐걱이며 돌아가는 소리, 소와 양의 울음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풀들이 서로의 몸을 살갑게 부딪치는 소리. 찰리는 이 소리들을 좋아하고, 또 늘 그리워했다. 무성히 자란 이름 모를 풀은 찰리의 누운 키를 훌쩍 넘어간다. 풀벌레들은 함부로 숙녀의 얼굴에 발을 딛거나 하지 않고 귓가에 다정한 노래를 흘려보낸다.
가만히 있으면 멀리서 노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세가 담겨 있다. 그것 또한 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찰리는 그 모든 치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심한 마음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던 도시의 기억을 묻어둔 채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삐걱삐걱,
사르륵 사르륵,
찌르르 찌르르,
“이번에 온 극단 말일세, 아니 글쎄 리어 왕 폐하의 망령이 있다더군!”
“아니 그게 참말인가?”
“소문으로는 그렇다네. 오늘 밤 극이 있으니, 한번 같이 알아봅세.”
“호오, 그러세. 기대되는군, 이거.”
“뭐어어어어어????????”
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문제의 대화를 나눈 두 노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황상 리어 왕의 망령이란, 폭군 리어 왕을 연기할 때 마치 신 들린 듯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찰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한 시골 사람, 그러니까 이름을... 스미스, 스미스라고 하자. 미스터 스미스가 도시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우연히 찰리의 극단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찰리는 최고의 폭군 연기자이다. 얼마나 멋진 연기인지, 설령 대본에 있는 대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말 그 왕의 대사라고 믿게 하는, 그야말로 천재.
그것이 순진한 시골 노인의 사고방식을 거쳐, 리어 왕의 망령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스미스는 경이와 공포에 질려 마을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리어 왕의 망령을 보았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온갖 미신과 초현상적 믿음이 아직 존재하는 시골 마을은 그것을 또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마을에서 마을 단위로까지 퍼져 나가 여기 이 마을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소문이 깔린 곳에 마침 찰리의 극단이 도착한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우연인가. 찰리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사람이 적기에 원했던 시골 마을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저녁에는 또 분명 관객이 많겠지...”
찰리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려먹은 적이 없다.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던 단원들은 예상치 못한 금액에 기뻐했으나, 오직 찰리만이 심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길다란 대기줄. 아마 이 마을의 사람들 모두가 나왔을 것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섞여 있다. 도시에서 몇 백 번이고 보아 왔던 광경이지만, 시골에서 이러한 광경을 보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건 같은 촌구석 출신인 찰리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심한 촌뜨기 소녀임과 동시에, 찰리는 어엿한 한 극단의 단장이며 프로 연기자이기도 했다. 그러한 높은 직책을 가졌다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사명이다.
찰리는 어떻게든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셨다. 효과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으나, 겨우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까지 가라앉았다.
어느 정도 진정되었으니, 책략을 짜 보자.
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극을 시작하는 것은 효율중심적인 도시에서나 사랑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느리고 한가한 시골이라면 극 전에 잠깐의 잡담은 허용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극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소문에 대한 해명을 하는 것이다. 리어 왕의 망령이란 그저 자신의 연기일 뿐이라고. 그럼 사람들은 소문의 미스터리를 이해함과 동시에, 앳된 소녀가 그 폭군의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상태로 극을 시작한다면, 최고조의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도, 찰리 자신도 서로 윈-윈인 셈이다. 더구나 소문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된다면, 권력자들의 귀에 들어갈 일도 없으므로 추격을 피하기 수월해진다. 그걸로 극단 전체에게도 윈. 트리플 윈이니 더 고민할 여지는 없다.
계획은 완벽하다. 해가 넘어가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약간의 바캉스라고 생각했지만 도시의 빅 스테이지와 다를 것이 없게 된 상황. 땅거미는 이미 내려앉은 지 오래.
약속된 시간은 기어코 찾아온다.
찰리는 지금 그 누구보다 확신에 차 있다. 이제 물러날 곳은 없으며, 이 커튼이 걷히면 생각한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잡담이 이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리어 왕의 망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마, 정말 왕이 오는 거에요?”
“망령이라니! 신의 뜻에 어긋나는 미신이야.”
“글쎄, 그건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
그 사이를 가르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크게 울렸다.
댕-
주변의 조명이 일시에 꺼지며, 관객들은 이야기를 멈춘 채 일제히 유일하게 조명이 켜진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침묵 중에 커튼이 휙, 하고 열린다. 그 사이로 찰리가 걸어 나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어, 그러니까... 시작하기에 앞서, 마을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문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네! 그 ‘리어 왕의 망령’ 이란 거요.”
찰리의 목소리가 극장 전체를 채우듯 한다. 모두의 관심사가 나오자, 관중들은 눈을 반짝이며 무대 위 소녀에게 집중했다.
“음... 그러니까, ‘리어 왕의 망령’ 이란 건, 사실 없죠. 그래요, 세상에 망령 같은 게 존재할 리가요.”
역시 많은 사람 앞에서 맨정신으로 연설하는 것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도 ‘잔말 말고 빨리 연극을 시작해!’ 하는 볼멘소리가 없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찰리는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뭐냐면... 놀랍게도... 음, 제 연기에 대한 찬사... 같은 거예요. 어, 제가, 리어 왕의 역을 맡거든요!”
어디까지나 예상 내의 결과다.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망령이 없는 건 둘째치고, 저 군중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잇는 가녀린 소녀가 그 폭군을 연기한다고?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이지?
“음... 그럼 제가 하고픈 말은... 여기까지예요. 모두, 즐거운 연극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찰리는 예의 바른 신사처럼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관중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찰리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과 기대감은 모두 곧 이어질 리어 왕의 연기에 쏠려 있었다.
커튼이 다시 내려지고, 이번에는 무대의 조명까지 모두 사그라든다.
무대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에 관중들 또한 숨을 죽인다. 하지만 찰리는 이것이 이어질 성대한 연출 전 잠시의 여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안다.
“목을 가다듬고... 흠흠.”
찰리의 마도술은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
“자, 공연을 시작하자.”
찰리-폭군 그 자체가 된 소녀는 힘차게 극의 시작을 선언한다. 그와 동시에 무대에 불이 차례로 켜지며 관중들의 눈에 환영이 비친다. 이미 이곳은 가설극장 따위가 아니다. 봉건적 왕정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의 경지를 꿈꾼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투영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다.
리어 왕.
막내딸의 솔직함을 배신으로 오해하여 그녀를 버리지만, 나머지 두 딸에게 정말로 배신당하여 광기에 빠지는 폭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 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 호국경께서는 모든 답을 종교와 성경에서 찾으라며 연극을 금지했지만, 연극에는 성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삶의 진실과 교훈이 있다.
복잡한 대립 관계 끝에 있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결말이다. 왕을 끝까지 사랑했던 막내딸의 죽음. 전쟁의 패배. 그리고 왕의 비운에 찬 쇼크사.
찰리의 연기가 칭송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정해진 결말일지라도 볼 때마다 새로운 몸짓과 말투와 표정. 그녀의 마도술은 항상 대본에 쓰인 고정된 운명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자아낸다.
지금 그녀는 리어 왕이 되어 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무대와 관객이 아닌 왕궁과 신하들, 그리고 세 공주.
더 무겁게, 더 따갑게, 더 떨리게. 늘 그랬듯이, 더, 더, 더, 더, 더 자극적으로, 더 광기 있게...
무대 위의 마법사. 폭군 중의 폭군. 광인 중의 광인. 그 입에서 나오는 마법의 말은 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문학적이며 공격적이다.
“나의 불쌍한 아이는 목 졸려 죽었구나! 이제는 생명도 없어, 없어. 개도 말도 심지어 시궁창의 쥐들조차 생명이 있는데 왜 너는 숨을 쉬지 못한다는 말이냐! 다시는,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다시는 말이다! 이것이 보이느냐? 저 아이의 얼굴을 보아라! 보라-그 입술을! 저기를 봐라, 저기를 봐라......”
비애에 빠진 폭군 리어 왕은 창백한 코델리아의 시신 위에 쓰러지고, 이내 죽음을 맞이한다. 숨을 거둠과 동시에 마도술 또한 서서히 사그라들며, 환각의 장막이 걷힌다. 또한 숨이 넘어갈 때까지 고조되었던 공기 또한 이완되기 시작하며, 극은 끝마칠 준비를 한다. 이제 리어 왕은 없고, 찰리가 동료 배우 위에 죽은 척 늘어진 채, 나머지 대사가 오가고 극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좀 격한 연기를 펼쳤는지 조금 어지럽다.
문득 찰리는 주변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더 이상 잔여 대사조차 이어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려 관중석을 향했다.
그때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리어 왕의 망령이 나타났다!”
뭐라고,
“저 소녀의 몸에 리어 왕의 망령이 깃든 게 틀림없어!”
잠깐, 그게 무슨,
“폐하, 저희를 용서하소서...!”
관객석도, 무대 위도 모두 아비규환. 배우들은 당황하고, 관중들은 공포와 경이에 질려 꽥꽥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아연실색하며 쓰러진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여러분! 잠시만 진정을...”
“리어 왕의 망령이다!”
“폐하께서 노하신 게야!”
“아이고, 나 죽네!”
찰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패닉 상태의 관중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들은 이 연극을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앞선 해명 따위는 잊어버릴 정도로.
---어찌저찌 단원들의 노력 아래 상황은 무사히 수습되었다.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아직도 떨림이 가시질 않는 손가락을 들어 머리카락을 고정했던 핀을 빼는 찰리에게 단원 하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밀크티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찾아왔다. 그 친절하고 상냥한 단원의 이름은... 아마 월터였을 것이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네요. 한잔해요.”
찰리는 컵을 받아들었다. 금방 끓인 차가 컵을 뜨겁게 덥힌 탓에 찰리의 여린 손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찰리는 빠르게 차를 한 입 홀짝 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고는, 차가운 테이블에 손을 대어 식혔다.
“휴, 고마워요, 월터...”
한 차례 소동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풀벌레들이 노래를 부르며 밤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있다.
“저... 월터, 저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 걸까요?”
말도 안 되는 신세 한탄에 월터는 사레에 들릴 뻔 했다.
“아... 분명 이상하게 들리겠죠... 그치만, 제 연기를 다들 현실로 착각하니까요. 뭔가... 환상을 보여주는 것일 뿐 연기라고 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해요...”
찰리의 하소연은 충분한 일리가 있다. 연기라 함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다. 연기자들은 현실과 이야기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하고, 관중들 또한 그것을 충분히 인지한 채로 극을 감상하는 것이 일종의 원칙이다. 그러나 찰리의 연극은 환각의 마도술을 사용함으로써 그 경계를 거의 무너뜨린다. 그렇게 되면 관중들은 현실과 이야기를 구별하지 못하고 혼란 속에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월터는 이 극단의 한 단원으로써, 그리고 찰리의 동료로써, 찰리의 기운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그는 축 처진 찰리의 어깨 위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확실히 연극이라는 것은 현실을 모방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데 그 의의가 있죠. 하지만 의의를 벗어나서, 목표를 한번 바라봐요.”
“목표?”
“네, 목표. 연극의 궁극적인 목표가 뭐죠?”
“음... 사람들에게 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찰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요. 늘 새로운 즐거움. 같은 대본, 같은 이야기, 같은 결말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건 사실 아주 어렵거든요. 그런데 찰리는 운 좋게도 그것에 유리한 마도술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 마도술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고요.”
찰리의 눈이 커졌다. 그래, 항상 자신은 무대에 서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
“원래라면 현실성과 철저한 구분을 지어야 할 연극이 정말 현실처럼 느껴진다면, 이보다 더한 자극이 있을까요?”
“그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더 나아가 미래까지 가 볼까요? 아마 그때쯤이면 그러한 자극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술은 대단히 발전하여 가상의 이야기를 정말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겠지요. 찰리는 지금 그것에 대한 좋은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인간 문화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선구자인 거죠!”
폿, 하고 찰리는 실수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조용한 시골을 좋아하는, 심지어 자신은 연기가 맞지 않다고까지 생각하는 찰리가 선구자라니.
“헉,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요. 사실일지 아닐지는 뭐 저도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찰리가 기운 내라고 한 소리에요.”
월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당황한 누군가의 마음을 안심시키기에 매우 효과적인 장치이다.
풀벌레가 노래하고 별이 춤을 추는 우아한 밤은 깊어져만 가며 또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 속에 근심 깊은 창천빛의 눈동자는 그 모든 풍경을 담은 채 촛불 아래 대본을 의미 없이 뒤적거린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리어 왕이 사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임을 깨달은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또한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뤼미에르라는 성씨의 두 형제가 찰리의 현실성 높은 연극에 대한 옛날 기록을 참고해 최초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 또한 별개의 이야기이다.
달력이 1977년의 어느 날을 가리키고 있을 무렵,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초연이 이루어졌다.
영화관에는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버틴도 그중 하나였다. 막이 내리고 엔딩 크레딧이 등장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버틴은 찰리를 떠올렸다.
‘제가 인간 문화의 선구자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찰리는 그런 말을 줄곧 해 왔다. 처음 그 말을 찰리에게 해준 사람을 버틴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버틴은 그 사람이 옳았다고 굳게 확신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마 관중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영화 속 은하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조연 제다이 중 한 명이라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연극은 영화의 형태로 변모하고, 더욱 현실성과 몰입감을 추구하며, 관중들에게 현실과 가상을 착각하는 기분 좋은 혼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 이전의 영화들도 그랬고, 앞으로의 영화들도 그럴 것이다.
진실로 그 소심한 소녀는 문화 패러다임의 대담한 선구자요, 창조자였던 것이다.
‘찰리에게 전해 줘야겠네. 이 생생한 감상을, 관중들의 반응을,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버틴은 그렇게 다짐하며 사람이 다 빠진 영화관을 마지막으로 나섰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행 가방을 양지바른 곳에 두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